봄 풀들의 싹이 땅위로 돋아나기 전에,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땅 위로 돋아난다.
물은 풀이 나아가는 흙 속의 길을 예비한다. 얼고 또 녹는 물의 싹들은 겨울 흙의 그 완강함을 흔들어서 ,풀어진 흙 속에서는 솜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의 미로들이 퍼져나간다.
풀의 싹들이 흙덩이의 무게를 치받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, 흙덩이의 무게가 솟아오르는 풀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.
풀싹이 무슨 힘으로 무거운 흙덩이를 밀쳐낼 수 있겠는가.
이것은 물리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고,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.
김훈-자전거 여행 中